Olvi Kim
by Olvi Ki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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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저자: 코리 닥터로우
  • 옮긴이: 최세진
  • 출판사: 아작
  • ISBN: 9791195628308

image-left 이 책을 읽은 기록을 보니 2020년 5월 초에 읽었다고 한다. 의도한 건 아닌데 어째 책을 읽고 - 1년 묵혔다가 -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패턴이 된 것 같다.

나는 책을 읽는 도중과 읽은 후, 메모지에 당시의 감상이나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두고 그 메모지를 책에 꽂아둔다. 블로그에 올리는 감상은 그 메모지를 바탕으로 적고 있는데, 블로그 글은 누구에게나 공개되기 때문에 다소 다듬어서 올리고 있다. 이 글이 2020년의 독서 시리즈의 첫 글도 아닌데 왜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책에 끼워진 메모지 상단에는 매우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기 때문이다.

완 전 초 강 추 !!!

얼마나 감명을 받았으면 이렇게 써놨는지. 그런데 스포일러(?)하자면, 2020년에 읽은 책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은 따로 있다. 이건 두 번째 쯤 될 것 같다.


이 책을 읽은 계기는 조지 오웰의 소설 <1984>의 21세기 버전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서였다. (그 책은 아주 예전에 읽은 책이었는데 매우 감명깊게 읽어서 여전히 소장하고 있다.) 일단 제목에서도 그 책과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풍겨온다. 그런데 책의 두께가 좀 있어서 이거 읽는데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어라? 뜻밖에도 이건 IT 보안 소설로도 볼 수 있다. 직업과 연관이 있어서인지 재미가 붙어 순식간에 읽었다. IT 쪽의 어떤 개념이 언급되는지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.

  • 6장: 암호화 개념
  • 7장: 베이즈 확률
  • 8장: 허위 양성 반응의 역설(엄밀히 말하면 수학이론이나 IT와 수학은 뗄 수 없는 관계라서 넣음), RFID
  • 9장: 개인정보의 중요성
  • 10장: 중간자 공격, 공개키 암호화, 신뢰망, 익스트림 프로그래밍
  • 17장: 대칭키 암호화(DES), SMTP, DNS, hosts 파일

그래서 IT 쪽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.


이 책의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다. 우리나라의 경우는 근과거로 볼 수도 있고, 해외 어딘가의 케이스로 보면 바로 지금 겪는 일이기도 하다. 또한 가까운 미래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. 그러다보니 느낀 게 참 많았고 몇 가지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.

  1.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든 생각은 우리나라 1980년대를 보는 듯 하다는 것이었다. 콕 집어 말하면 남영동? 그리고 20장에 가서 다시금 ‘남영동 맞네’ 하게 됐다.
  2. 팬데믹 상황에서 신용카드 등의 수단으로 경로 추적이 가능한 우리나라 시스템은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. 하지만 미국/유럽 등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의 관점에서는 빅 브라더의 행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. 물론 국내에서도 그런 우려를 표한 의견이 있었다.
  3. 정부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상황이고, 이걸 유지할 수 밖에 없다면 (2번 케이스를 볼 때 이점이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) 어떤 정부를 국민이 선출하느냐, 그리고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남용하지 않도록 잘 감시하는 국민의 역할이 중요하다.
  4. 잃을 게 있는 사람, 쉽게 말해 가진 게 있는 사람은 보수화될 수 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.
  5. 사회적 약자 이슈와 세대 갈등은 현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.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모두가 인간의 기본 권리를 가진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다. 그런데 왜 갈등이 발생하는가. 내 소견으로는 4번에서 언급한 보수화된 사람들이 존재하고, 그들이 파이를 나누는 것이 곧 파이를 잃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.

한편 책을 읽는 도중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.

주인공이 온갖 해킹, 불법을 저지른 건 정당한가? 선의를 위해 악한 수단을 써도 되는 것인가?

책을 다 읽어갈 무렵 스스로 아래와 같은 답을 내렸다.

  •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독립 운동도 폭력 방식이 있었다. 테러, 암살 등등.. 마냥 주인공의 방식을 비난할 수는 없다.
  • 다만 정부가 정보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주인공도 영리하게 정도껏 수단을 잘 쓴 편이다.

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 정답은 없다.


이 책의 결말은 우리나라 현실과 비슷하다. 아니 어느 나라나 비슷할 거 같다. 죄를 저지른 사람이 명백히 존재하는데 죄값을 치루지 않고 피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.

위에 내 감상을 언급한 부분에 어떤 정부를 국민이 선출하느냐, 그리고 정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남용하지 않도록 잘 감시하는 국민의 역할을 언급했는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결국 이것이다. 이 책 말미에 나오는 투표 독려 장면은 낯익다. 큰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.

그런데 내 생각에, 우리나라는 투표 독려와 투표 실행은 잘 하는 편인 거 같은데, 그 다음 스텝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.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무조건적인 비난만 존재하는 느낌이랄까. 여기에는 가짜뉴스의 영향도 한 몫하는 느낌이다. 그런 점에서 현대 시민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수로 갖춰야 할 능력은 비판적 사고 아닐까 싶다.

마지막으로 이 책 내용과 상관없이, 나에게 큰 위로를 준 구절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.

예전에 했던 실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는 방법이 있다. 그 실수들에서 배우면 된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