- 저자: 유시민
- 출판사: 웅진지식하우스
- ISBN: 9788901101569
작가 유시민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가 어떤지 모르겠다. 내 의견은 이렇다 - 그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는 명백히 호불호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, 작가로서는 매우 존경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.
그의 책은 일단 이해가 쉽다. 그만큼 간결하게 문장을 잘 쓴다는 이야기다. 작가로서 능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. 사실 그런 능력을 갖추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.
글을 잘 쓰려면 글을 잘 쓰는 작가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경우 유시민 작가의 책을 많이 읽는다. 그래서 2020년 5월 당시 그 전에 출간된 책은 이미 거의 다 읽은 상태였다. 그런데 팬데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불현듯 이 책이 생각났다.
이 책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. 머리말의 일부를 빌어 표현하자면 이것은 문명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위대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며, 위대한 책을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
를 다룬 책이다. 처음 읽을 때에는 유시민 작가가 추천하는 책은 무엇인가 궁금해서 읽었고, 당시에는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.
하지만 왠지 이 시점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저번에 읽을 때와 뭔가 다른 느낌이 올 듯한 촉이 왔다고 해야하나?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촉은 맞아 떨어졌다! 예전에 읽을 때와 새삼 다르게 느낀 책은 다음과 같다.
04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 : 토머스 맬서스, ‘인구론’
내가 느낀 그대로를 다 언급하고 싶진 않다.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. 처음 읽을 땐 ‘이런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. 하지만 너무 또라이 아닌가?’ 했던 것이, 팬데믹 상황에서 보니 이렇게 소름끼칠 수가 없었다. 힌트를 주자면 인구론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페스트
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.
사실 팬데믹이라 새삼 다르게 읽힌 부분은 이것 하나 밖에 없었다. 나머지는 그냥 두 번째 읽어보니 다르게 보이더라 하는 것들.
0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: 최인훈, ‘광장’
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이념적인 좌우가 꽤 우편향된 경향이 있다. 쉽게 말해 유럽에서는 약한 우파 정도로 분류될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로 불린다. 그 영향인지 몰라도 비약도 좀 심한 편이다. 예를 들어 진보 성향을 가진 이는 곧 공산주의를 숭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. 이는 그래도 약과이고, 진보 성향을 가진 이가 북한식 독재주의를 옹호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. 진보와 보수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도 이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.
소설 광장
이야말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.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.
0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: 사마천, ‘사기’
이 부분이 이전에 읽을 때와 다르게 느낀 이유는 그 사이에 내가 직장인으로서 얻은 경험치 탓이다. 그때는 그저 건국에 대한 이야기, 불운한 정치인의 이야기로 생각했다. 다시 읽으며 느낀 점은 건국 과정과 스타트업의 성장은 묘하게 닮았다
는 것이다. 스타트업의 대표가 제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며 이는 지양해야 할 방향성이다. 내가 말하는 닮은 점이란,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이 건국 및 국가 성장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비추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.
특히 개국공신에 대한 언급이 그렇게 느껴졌다.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초기 멤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. 하지만 회사의 방향성이나 비전이 바뀔 수 있다. 투자를 받고 성장하던 중 그럴 수 있고, 혹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 다른 목표를 위해 달리다가 그럴 수 있다. 그럴 때 기존 멤버와 마찰이 생길 수 있다. 내가 기대하던 회사가 아니라며 불만을 갖거나, 바뀐 방향에 적합하지 않아 정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. (이는 내가 실제 경험 혹은 목격한 사례이다.) 이런 이슈를 해결하는 과정이 개국공신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
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: 소스타인 베블런, ‘유한계급론’
SNS를 만든 이들은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기존 경제학에 대한 반란이라고 해야할까. 기존의 경제학자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겠지만, 작금의 시대를 바라보자면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너무 꿰뚫어서 불편하게 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다.
이 챕터의 소제목 중 하나가 일부러 낭비하는 사람들
인데, 이런 사람들이 활약하는 곳이 있지 않은가? 인별이라던가 너튜브라던가..
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달랐던 챕터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.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궁금해져 실제 책 구매에까지 다다른 경우를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. 그에 해당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.
- 리영희, <전환시대의 논리>
- 하인리히 뵐, <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>
그런데 전환시대의 논리는 아직 못읽었네…ㅠㅠ
여담. 내가 읽은 건 초판 10쇄였고, 현재는 개정판이 나와있다. 구판과 개정판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. 개정판의 목차를 보니 내용 구성 자체는 동일하다. 개정판 소개를 볼 때 단순 리커버인 것 같기도 하다.